첫 목욕은 서로에게 지옥이었다발톱, 양치, 빗질까지 하나씩 적응시키며 나름 베테랑 집사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넘지 못한 최고 난도의 산이 있었으니, 바로 목욕이다.계기는 우리 고양이 호두가 어딘가에서 끈적한 무언가를 잔뜩 묻히고 온 날이었다. 혀로 핥아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씻겨야 했다. 고양이 전용 샴푸까지 미리 준비해 두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욕을 한 번 시켰는데,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문제는 물을 틀기도 전부터였다. 목욕을 시키려고 욕실에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호두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욕실 이곳저곳을 계속 돌아다니며 도망 다니기 바빠서, 나는 호두를 붙잡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겨우 잡아도 미끄러지듯..
새 장난감도 3일이면 시들해졌다무는 버릇부터 빗질까지, 그동안 여러 문제를 사냥 놀이로 풀어왔다. 그런데 놀이를 계속하다 보니 새로운 벽에 부딪혔다. 바로 쉽게 질려한다는 것이다.분명 처음엔 낚싯대만 꺼내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다. 그런데 며칠 같은 방식으로 놀아주니 반응이 뚝 떨어졌다. 낚싯대를 흔들어도 슬쩍 보고는 그냥 엎드려버리는 날이 늘었다. 공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발로 툭툭 치며 잘 놀더니, 어느새 굴려줘도 쳐다도 안 봤다.새 장난감을 사주면 될까 싶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새것도 3일이면 시들해졌다. 장난감을 계속 사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안 갖고 노는 장난감만 쌓여갔다.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장난감의 개수가 아니라, 내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놀아준 것 아닐까?..
털은 날리는데 빗질은 질색이었다발톱, 양치, 화장실까지 하나씩 정복하고 나니 또 하나 미뤄둔 숙제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빗질이다.환절기가 되자 온 집 안에 털이 날리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입으면 순식간에 털투성이가 됐고, 청소기를 돌려도 돌아서면 또 굴러다녔다. 무엇보다 걱정된 건 우리 고양이 호두가 그루밍을 하다 삼킨 털이 헤어볼로 뭉치는 것이었다. 빗질로 죽은 털을 미리 걷어내주는 게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문제는 호두가 빗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브러시를 들고 다가가기만 해도 슬금슬금 도망갔고, 억지로 몇 번 빗기려 하면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거나 손을 물려고 했다. 특히 등 아래쪽이나 꼬리 근처를 건드리면 예민하게 반응했다.억지로 빗기다가는 빗 = 싫은 것으로 굳어질 게 뻔했다. 그래서 ..
현관문 앞에서 우는 소리에 발이 안 떨어졌다그동안 함께 있는 시간의 문제들(무는 버릇, 잠자리, 캣타워)은 하나씩 다뤄왔다. 그런데 정작 신경 쓰이는 건 내가 집에 없을 때 우리 집 고양이 호두가 어떻게 지네는 가였다.계기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외출하려고 신발을 신는데, 고양이가 현관 앞에 앉아 평소보다 크게 울었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애처롭게 우는 소리가 들려서,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집에 돌아올 때는 늘 똑같았다. 문을 열면 현관 앞에서 엄청나게 야옹거리며 나를 반겼다. 특히 여행이나 긴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문 앞에서 목청껏 울며 다리에 몸을 비비는 그 모습에 짠하면서도 어찌나 미안하던지. 나 없는 동안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웠을까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처음엔 그저 반가워하는..
비싸게 산 캣타워를 안 쓰는 게 문제였다큰맘 먹고 제법 괜찮은 캣타워를 하나 샀다. 높이도 있고 볼이 있는 걸로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제품이었다. 그런데 웬걸, 호두가 거의 쓰질 않았다.처음 며칠은 신기해서 오르내리더니, 금방 흥미를 잃었다. 꼭대기층은 며칠에 한 번 올라갈까 말까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소파나 바닥에서 보냈다. 비싼 캣타워가 그냥 거실 한구석의 커다란 장식품이 되어버린 것이다.원래 캣타워는 거실 안쪽, 벽을 등진 좀 어두운 구석에 놓여 있었다. 자리가 애매해서였는지, 아니면 볼 게 없어서였는지 도통 관심을 안 줬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호두가 늘 창틀에 올라가 바깥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혹시 캣타워를 창가로 옮기면, 바깥 구경을 하면서 저 위를 좋아하..
같이 자는 게 낭만인 줄 알았는데우리 집 고양이 호두와 함께 침대에서 자는 건 처음엔 로망이었다. 발치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호두는 얌전히 자는 타입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베개 옆으로 올라와 얼굴을 꾹꾹 누르고, 머리카락을 물고, 새벽엔 가슴 위에 올라앉아 골골거리며 나를 깨웠다. 귀엽긴 한데 문제는 내가 잠을 못 잔다는 것이었다.앞서 새벽 습격은 취침 전 사냥 놀이로 어느 정도 잡았지만, 이건 결이 좀 달랐다. 공격이 아니라 애정 표현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거절하기가 미안했다. 하지만 매일 밤 서너 번씩 깨다 보니 낮 동안 컨디션이 엉망이 됐다.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주일간 침실에서 고양이를 분리해 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