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애완동물

칫솔만 보면 고개를 홱 돌리던 고양이에게 양치를 익숙하게 만드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어요

starmini1 2026. 9. 1. 18:41

목차


    잇몸이 붉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양치를 시작했다

    "잇몸이 살짝 붉네요."
    정기 검진 날, 수의사 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마음이 철렁했다. 이대로 두면 치석이 쌓이고 치주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고양이 스케일링은 마취를 해야 해서, 그전에 집에서 양치 습관을 들이는 게 최선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문제는 호두가 입 근처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발톱 깎기도 하루 한 개씩 쪼개서 겨우 적응시킨 마당에, 입 안에 손가락을 넣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한 번 시도했다가 고개를 홱 돌리고 도망가는 걸 보고,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았다.
    그래서 발톱 때처럼 아주 잘게 쪼개서, 한 달에 걸쳐 천천히 적응시켜 보기로 했다.

    양치를 다섯 걸음으로 잘게 나눠보기로 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자료를 참고해서, 처음부터 '양치 완성'을 목표로 잡지 않고 다섯 단계로 나눴다.
    치약 냄새에 익숙해지기, 치약 맛보기, 입술과 잇몸 만지기, 손가락이나 거즈로 문지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이소에서 산 핑거 칫솔로 송곳니 몇 초 닦기.
    규칙은 발톱 때와 비슷했다. 한 단계를 해내면 곧바로 츄르를 주고, 싫어하면 억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한 단계에 며칠이 걸리든 호두가 편해 보일 때만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 치약은 절대 쓰면 안 되고, 반드시 고양이 전용 치약을 써야 한다. 사람 치약에 든 성분은 고양이에게 해로울 수 있어서 이 부분은 처음부터 확실히 하고 시작했다.

    칫솔이 입에 들어가기까지 꼬박 한 달

    첫 주, 치약을 간식처럼 핥아먹기 시작했다

    첫 주는 욕심을 완전히 버리고 냄새 맡기부터 했다. 치약 튜브를 열어 코앞에 살짝 대주기만 했다.
    처음 산 치약은 거의 무향에 가까웠는데, 호두는 냄새를 맡고도 시큰둥했다. 그래서 닭고기 맛 치약으로 바꿨더니 반응이 확 달라졌다. 코를 킁킁 대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흘쯤 지나자 손가락에 치약을 살짝 짜서 내밀면 호두가 핥아먹었다. 이 단계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치약을 '맛있는 것'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게 이렇게 중요한 첫 단추였다.

    둘째 주, 입술 하나 들추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여기서부터 난이도가 확 올라갔다. 치약 묻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짝 들추려 하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첫날은 입술만 몇 초 만지고 바로 간식으로 끝냈다. 며칠 반복하니 입술을 들추는 것까진 참아줬다. 다만 잇몸을 만지려 하면 여전히 거부했다.
    이 주는 진도가 거의 안 나가는 것 같아서 나도 좀 답답했다. 그래도 여기서 조급해지면 안 된다는 걸 발톱 때 배웠기에 참았다.

    셋째 주, 거즈 때문에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주다. 손가락에 거즈를 감고 치약을 묻혀 이빨을 살짝 문지르려 했는데, 호두는 거즈의 낯선 촉감을 극도로 싫어했다. 한 번 세게 거부한 뒤로는 이틀 동안 손가락만 봐도 경계하며 도망가버렸다.
    그래서 계획을 바꿨다. 거즈는 잠시 내려놓고, 치약 묻힌 맨손가락으로 이빨을 쓱 문지르는 데까지만 돌아갔다. 뒷걸음질 같아 보였지만, 억지로 거즈를 밀어붙였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다 무너졌을 것이다. 며칠 뒤 다시 거즈를 시도하니 그제야 조금 받아들였다.

    마지막 주, 드디어 송곳니를 3초 닦았다

    핑거 칫솔에 치약을 묻혀 제일 닿기 쉬운 송곳니부터 시도했다. 어금니는 처음부터 무리라고 보고 아예 목표에서 뺐다.
    처음엔 1초, 다음엔 2초, 그렇게 조금씩 늘려서 마지막엔 송곳니를 3초 정도 닦는 데 성공했다. 물론 매번 되진 않았고, 컨디션 안 좋은 날은 여전히 거부했다. 그래도 칫솔이 입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 게 이 한 달의 가장 큰 성과였다.

    자료에는 없던 것들을 호두가 알려줬다

    한 달을 해보니 자료에는 잘 안 나오는 현실적인 것들이 보였다.
    치약 맛이 절반이었다. 무향에 가까운 치약엔 관심도 없던 호두가 닭고기 맛으로 바꾸자 태도가 달라졌다. 맛을 좋아하게 만드는 게 양치 훈련의 진짜 출발점이었다.
    물러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다. 셋째 주에 한 단계 되돌아간 게 오히려 전체를 살렸다. 단계는 위로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양치를 목표로 했으면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어금니까지 꼼꼼히 닦겠다고 덤볐다면 진작 포기했을 거다. 송곳니 몇 개라도 닦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현실적인 눈높이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지금도 어금니는 못 닦는다

    솔직히 한 달 만에 완벽한 양치가 되진 않았다. 지금도 호두 이빨을 전부 매일 닦는 건 무리고, 송곳니와 앞니 위주로 며칠에 한 번 닦는 수준이다.
    그래도 처음엔 입 근처도 못 만지게 하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무엇보다 양치를 무서운 일이 아니라 '끝나면 간식이 나오는 일'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 것만으로도 이 한 달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다음 정기 검진 날엔 선생님께 잇몸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 생각이다. 그때는 철렁하는 대신,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빗만 들면 도망가던 호두가 먼저 다가오기까지, 간식 하나 들고 버텨본 14일

    털은 날리는데 빗질은 질색이었다발톱, 양치, 화장실까지 하나씩 정복하고 나니 또 하나 미뤄둔 숙제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빗질이다.환절기가 되자 온 집 안에 털이 날리기 시작했다. 검은 옷

    starminim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