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초인종이 울리면 호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호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손님이 올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호두는 쏜살같이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시간이 좀 지나면 슬금슬금 나오긴 하지만, 손님이 있는 동안은 확실히 평소보다 긴장한 기색이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다. 가끔 들르는 친척들, 그리고 주기적으로 오는 정수기 점검 아저씨 정도다. 그런데 자주 보는 친척이든 처음 보는 아저씨든, 낯선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리면 일단 숨는 건 똑같았다. 특히 정수기 아저씨처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오면 더 깊이 숨었다.
처음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좀 사교적이면 좋을 텐데 싶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손님이 왔을 때 숨는 건 고양이에게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행동이라고 한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자기 공간에 낯선 존재가 들어오면 위협으로 느낀다.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는 건 본능이고, 오히려 숨을 줄 안다는 건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숨는 게 아니라, 숨을 곳이 마땅치 않거나 억지로 끌려 나올 때 생기는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숨는 버릇을 고치는 게 아니라, 마음 편히 숨었다가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3주 동안 지켜봤다.

숨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숨을 곳이 매번 달랐다
지켜보니 호두는 숨는 곳이 그때그때 달랐다. 어떤 날은 침대 밑, 어떤 날은 가구 뒤 구석. 딱히 '여기가 내 안전지대'라고 정해둔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숨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야 했고, 그중엔 좁고 위험한 틈이나 사람 손이 닿기 쉬운 곳도 있었다. 특히 침대 밑처럼 사람이 손을 뻗어 꺼낼 수 있는 곳은 오히려 불안을 키웠다.
그래서 호두만의 은신처를 정해주기로 했다. 사람이 억지로 꺼낼 수 없는 아늑한 구조여야 하고, 몸을 완전히 숨기면서도 밖을 살필 수 있어야 하고, 조용한 구석이나 높은 곳이어야 했다.
숨숨집 하나가 생기자 숨는 모습이 달라졌다
첫 주, 손님이 없을 때 먼저 친해지게 했다
조용한 구석에 지붕이 있는 아늑한 숨숨집을 하나 놓아줬다. 안에는 평소 쓰던 담요를 깔아 익숙한 냄새가 나게 했다. 사람이 오가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방해받지 않는 자리를 골랐다.
처음 며칠은 손님이 없는 평소에 이곳과 친해지게 했다. 안에 간식을 두고 근처에서 놀아주며 '여긴 좋은 곳'이라는 기억을 만들어줬다. 사나흘쯤 지나자 평소에도 그 안에 들어가 쉬기 시작했다.
둘째 주, 정수기 점검 날 곧장 숨숨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실제로 손님이 왔을 때를 지켜봤다. 마침 정수기 점검 아저씨가 오는 날이었다. 초인종이 울리자 역시 숨었는데, 이번엔 여기저기 헤매지 않고 곧장 숨숨집으로 들어갔다. 숨을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으로 허둥대는 모습이 확 줄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 태도였다. 예전 같으면 "괜찮아, 나와도 돼" 하며 꺼내려했겠지만, 이번엔 철저히 내버려 뒀다. 아저씨께도 숨어 있는 동안은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호두는 숨숨집 안에서 안정을 찾았고, 점검이 끝나갈 무렵인 10분쯤 뒤 슬금슬금 나와 멀찍이서 상황을 살폈다. 예전보다 확실히 빨라진 반응이었다.
셋째 주, 친척들이 왔을 때도 10분쯤 지나 스스로 나왔다
셋째 주엔 친척들이 놀러 왔다. 자주 보는 사람들인데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니 역시 숨숨집으로 쏙 들어갔다. 그래도 그대로 두니, 이번에도 10분 남짓 지나 스스로 나왔다. 안전한 곳에서 상황을 살피다가 '이 사람들은 괜찮겠다' 싶으면 나오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친척들에게도 미리 쳐다보거나 다가가지 말고 그냥 없는 셈 쳐 달라고 부탁해 뒀다. 덕분에 호두는 나온 뒤에도 자기 자리에서 편안하게 사람들을 구경했다. 손님을 반기는 사교적인 고양이가 된 건 아니지만, 숨을 때의 불안과 허둥댐은 확실히 줄었다.
끌어내지 않으니 오히려 더 빨리 나왔다
3주 동안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숨는 걸 막지 않는 게 먼저였다. 숨는 건 정상이고, 억지로 끌어내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마음껏 숨게 두니 신기하게도 더 빨리 나왔다. 손님이 와도 이제는 10분쯤이면 스스로 나온다.
정해진 안전지대가 있다는 게 큰 차이를 만들었다. 매번 다른 곳에 숨을 땐 허둥댔지만, 숨숨집이 생기니 곧장 그리로 가서 안정을 찾았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안전한 곳 하나가 불안을 크게 줄여줬다.
손님에게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낯선 사람이 쳐다보거나 다가가면 고양이는 위협으로 느낀다. 친척이든 점검 오신 분이든, 숨어 있으면 그냥 없는 셈 쳐 달라고 미리 부탁하는 것만으로 호두가 훨씬 편안해했다. 시선을 주지 않는 게 배려였다.
은신처는 절대 사람이 손을 넣어 꺼내는 곳이 되면 안 된다. 그 순간 안전지대가 함정으로 바뀐다. 숨숨집에 들어간 호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족과 손님 모두 함께 지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손님이 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오지 않거나, 밥을 안 먹거나, 긴장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단순한 낯가림 이상일 수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다는 뜻이니,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와 상담해 보는 게 좋다.
호두는 지금도 손님이 오면 숨는다, 그래도 괜찮다
호두는 여전히 손님이 오면 숨는다. 친척이 와도, 정수기 아저씨가 와도 일단은 숨는다. 앞으로도 굳이 고칠 생각은 없다. 숨는 건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호두가 스스로를 지키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니까.
달라진 건 숨는 방식이다. 여기저기 불안하게 헤매던 데서, 정해진 곳으로 차분히 피했다가 10분쯤 뒤 스스로 나오는 쪽으로. 숨숨집 하나 만들어주고 억지로 끌어내지 않은 것만으로, 손님이 오는 날이 호두에게 훨씬 덜 무서운 날이 됐다.
다음 정수기 점검 날에도 호두는 아마 숨숨집으로 쏙 들어갈 것이다. 그럼 나는 아저씨께 미리 한마디만 해두면 된다. 숨어 있으면 그냥 없는 셈 쳐 주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동장만 꺼내면 슬금슬금 피하던 호두, 평소에 숨숨집으로 내어줬더니 생긴 2주간의 변화
이동장을 꺼내면 호두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이동장이 나오면 병원에 간다. 호두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패닉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확실히 싫어했다. 이동장을 꺼내면 슬금슬금
starminimi.com
'애완동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끔 식탁에 슬쩍 올라오던 호두, 버릇이 되기 전에 혼내지 않고 바로잡아 본 2주 (0) | 2026.09.29 |
|---|---|
| 츄르에 섞어도 알약만 쏙 뱉어내서, 결국 직접 먹이고 바로 츄르를 준 열흘 (0) | 2026.09.21 |
| 이동장만 꺼내면 슬금슬금 피하던 호두, 평소에 숨숨집으로 내어줬더니 생긴 2주간의 변화 (0) | 2026.09.16 |
| 고양이가 물을 너무 안 마셔서 걱정되길래, 물그릇 모양과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본 2주 (0) | 2026.09.15 |
| 새 사료는 입에도 안 대던 고양이, 먹던 사료에 조금씩 섞어가며 바꾸는 데 열흘이 걸렸어요 (0) | 202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