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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긴 하는데, 이걸로 충분한 걸까
아침에 가득 채운 물그릇이 저녁까지 얼마나 줄었는지 들여다보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고양이와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고양이는 원래 물을 잘 안 마시는 동물이라는 것. 사막 지역에서 온 동물이라 몸이 물을 아껴 쓰도록 되어 있고, 그래서 수분이 부족하면 방광염이나 신장 질환 같은 비뇨기 문제에 취약하다고 한다.
호두가 물을 아예 안 마시는 건 아니었다. 하루에 몇 번은 물그릇으로 가서 마셨고, 물이 줄어드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마시는 것 같았다. 다만 충분한지는 확신이 안 섰다. 건식 사료 위주라 음식에서 얻는 수분도 적을 텐데, 물이라도 넉넉히 마셔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동안 쓰던 건 다이소에서 산 물그릇이었다. 겉은 플라스틱, 안쪽은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고, 바닥이 살짝 기울어져 물이 한쪽으로 모이는 그릇이다. 이걸 밥그릇 옆에 두는 게 전부였다.
찾아보니 물그릇 모양과 놓는 자리만 바꿔도 마시는 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2주 동안 직접 바꿔보기로 했다.

그릇 모양과 놓는 자리를 따로따로 바꿔봤다
바꿔볼 건 두 가지였다. 물그릇의 모양, 그리고 놓는 자리.
자리는 세 곳을 후보로 잡았다. 원래처럼 밥그릇 바로 옆, 밥그릇과 화장실에서 완전히 떨어진 조용한 곳, 그리고 호두가 자주 지나다니는 거실 길목. 세 곳을 며칠씩 바꿔가며 지켜봤다.
그릇은 원래 쓰던 기울어진 스테인리스 그릇 외에 더 넓고 얕은 그릇으로도 바꿔봤다.
마시는 양을 정확히 재긴 어려워서, 아침에 담은 물이 저녁에 얼마나 줄었는지, 물 마시러 가는 걸 몇 번이나 봤는지로 대략 가늠했다.
물그릇을 밥 옆에서 떼어놓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밥그릇 옆 물에는 사료 부스러기가 떠 있었다
처음 나흘은 원래 방식 그대로, 밥그릇 바로 옆에 쓰던 그릇을 두고 기준을 잡았다. 마시긴 하는데 딱 예전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켜보다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밥그릇 바로 옆이라 사료 부스러기가 물에 떨어져서 물이 금세 지저분해졌다. 야생의 고양이는 먹이 근처의 물을 오염된 물로 여겨 피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호두도 밥 옆의 물을 꺼렸을 수 있겠다 싶었다.
조용한 곳으로 옮기고 넓은 그릇으로 바꿔봤다
닷새째부터는 물그릇을 밥그릇, 화장실과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여기서 변화가 보였다.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으니 물이 늘 깨끗했고, 물 마시러 가는 모습이 조금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원래 쓰던 그릇은 바닥이 기울어져 물이 한쪽에 모이는 구조라 마시기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안쪽이 좁아서 마실 때 수염이 그릇 벽에 닿는 게 신경 쓰였다. 그래서 더 넓고 얕은 그릇으로 바꿔봤는데, 수염이 덜 닿아서인지 이쪽도 편하게 마셨다. 수염이 닿는 불편함이 실제로 영향이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나눠 두니 지나가다 한 모금씩 마셨다
열흘째부터는 물그릇을 한 곳에만 두지 않고 집 안 여러 군데에 나눠 놓았다. 거실에 하나, 조용한 곳에 하나 이런 식으로. 그랬더니 지나다니다 눈에 띌 때마다 한 번씩 마시는 일이 늘었다.
결국 우리 집에서 가장 잘 통한 건 수염이 덜 닿는 넓은 그릇, 밥과 화장실에서 떨어진 자리, 그리고 여러 곳에 나눠 두기였다. 하나만 바꿀 때보다 이걸 합쳤을 때 물 마시는 횟수가 확실히 늘었다.
호두가 물을 덜 마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2주를 해보면서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배웠다.
물그릇은 밥그릇, 화장실과 떨어뜨리는 게 좋았다. 밥 옆이면 부스러기로 물이 더러워지고, 화장실 근처면 고양이가 꺼린다. 세 곳을 떼어놓는 것만으로 물이 깨끗해지고 호두가 더 자주 찾았다.
수염이 닿지 않는 넓은 그릇이 편했다. 안쪽이 좁은 그릇은 마실 때 수염이 벽에 닿아 불편할 수 있다. 사소해 보여도 고양이에겐 꽤 큰 차이였다.
여러 곳에 두는 게 의외로 효과가 컸다. 고양이는 물을 마시려고 일부러 먼 길을 가진 않는다. 대신 다니는 길 곳곳에 물이 있으면 눈에 띌 때 한 번씩 마신다. 물을 가까이 두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물은 매일 갈아줘야 했다. 며칠 둔 물은 잘 안 마셨다. 아무리 좋은 그릇과 자리라도 물이 신선하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특히 스테인리스 안쪽은 금방 미끈해져서 매일 헹구고 닦아주는 게 좋았다.
그리고 건강 이야기도 꼭 덧붙이고 싶다. 물그릇을 아무리 바꿔도 마시는 양이 너무 적거나, 반대로 갑자기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면 그릇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신장 질환이나 당뇨 같은 병의 신호일 수도 있으니, 평소와 확연히 다르게 물을 마시거나 소변량이 변했다면 병원에 상담해 보는 게 좋다.
다이소 그릇 하나로도 충분했다
호두가 갑자기 물을 벌컥벌컥 마시게 된 건 아니다. 애초에 아예 안 마시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물 마시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건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비뇨기 건강에 조금은 보탬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밥 옆이라 물이 더럽거나, 그릇이 좁아 수염이 닿거나, 너무 멀어서 안 가거나. 그 이유를 하나씩 없애주니 비싼 정수기를 사지 않고도 마시는 양을 늘릴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그릇 가격이 아니라 호두가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조건이었다.
요즘도 저녁이면 물그릇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그대로다. 다만 이제는 한 군데가 아니라 집 안 여러 군데를 한 바퀴 둘러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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