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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히 골라 온 새 사료를 냄새만 맡고 돌아섰다
결국 원래 사료를 다시 부어주고 말았다. 새 사료를 처음 꺼낸 바로 그날이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사료를 더 좋은 걸로 바꿔주고 싶었다. 성분을 꼼꼼히 비교해서 새 사료를 골랐고, 이제 그릇에 부어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호두는 그릇에 코를 대고 냄새만 맡더니 홱 돌아섰다. 배고프면 먹겠지 싶어 그대로 뒀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입도 안 댔다. 원래 사료 그릇을 치우고 새것만 줬더니, 밥그릇 앞에서 애처롭게 울며 나를 쳐다봤다.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
찾아보니 고양이는 입맛이 굉장히 보수적이라, 사료를 갑자기 바꾸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됐다. 고양이가 밥을 안 먹고 버티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만 제대로 못 먹어도 지방간이라는 심각한 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배고프면 먹겠지' 하고 굶기는 건 절대 해선 안 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원래 사료와 새 사료를 조금씩 섞어가며 천천히 바꿔보기로 했다.
급한 마음에 절반을 섞었다가 그릇째 외면당했다
사실 섞어 먹이기도 처음엔 실패했다. 마음이 급했던 게 문제였다.
빨리 바꾸고 싶은 욕심에 첫날부터 새 사료를 절반이나 섞어버렸다. 결과는 뻔했다. 냄새가 확 달라진 걸 눈치챈 호두는 그릇 전체를 외면했다. 그 안에 섞인 원래 사료까지 안 먹었다. 너무 급하게 섞는 바람에 익숙한 사료마저 '이상한 밥'이 되어버린 것이다.
섞는 건 맞는데, 속도가 훨씬 더 느려야 했다. 호두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새 사료를 늘려야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이번엔 열흘에 걸쳐 천천히 비율을 조절하기로 했다.
이번엔 호두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가기로 했다
흔히 권장되는 방식을 참고해서 계획을 잡았다.
처음 사흘은 원래 사료 80~90%에 새 사료 10~20%. 나흘째부터 엿새째까지는 원래 사료 60~70%에 새 사료 30~40%.
이레째부터 아흐레째까지는 원래 사료 40%에 새 사료 60%. 열흘째엔 새 사료 80% 이상. 그 뒤로도 잘 먹으면 새 사료 100%로 마무리한다.
규칙도 하나 더 정했다. 어느 단계든 사료를 남기거나 거부하면, 비율을 올리지 않고 그전 단계로 돌아가 며칠 더 머문다. 첫 실패에서 배운 대로, 절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남기는 날엔 한 걸음 물러서며 열흘을 채웠다
처음 사흘은 새 사료를 10~20% 정도만 아주 살짝 섞었다. 다행히 이 정도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평소처럼 잘 먹었다. 그릇을 싹 비운 걸 보고 나서야 안심했다.
나흘째에 새 사료를 30~40%로 올렸다. 그날은 잘 먹었는데, 닷새째에 살짝 남기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밀어붙였겠지만, 규칙대로 엿새째엔 비율을 다시 조금 낮췄다. 그러자 다시 잘 먹었다.
이레째부터 새 사료가 60%로 절반을 넘었다. 냄새와 맛의 중심이 새 사료로 넘어가는 시기라 가장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앞에서 천천히 적응한 덕분인지 큰 거부 없이 먹어줬다. 그릇에 남는 양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열흘째. 그릇 대부분이 새 사료인데도 잘 먹었다. 첫 시도 때 절반만 섞어도 통째로 거부하던 걸 생각하면 완전히 딴판이었다. 며칠 더 지켜본 뒤 새 사료 100%로 무사히 넘어갔다.

사람이 답답할 만큼 느려야 고양이에겐 딱 맞았다
이번에 직접 겪으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첫 시도가 실패한 건 사료가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빨리 바꾸려 해서였다. 호두의 보수적인 입맛엔 사람이 답답할 만큼 천천히 가는 게 정답이었다.
물러설 줄 아는 게 핵심이었다. 중간에 남기기 시작했을 때 밀어붙이지 않고 한 단계 되돌아간 게 전체를 살렸다. 비율은 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것이었다.
향을 살려주는 것도 도움이 됐다. 새 사료에 미지근한 물을 살짝 부어 향을 올리거나, 좋아하는 습식 사료를 아주 조금 섞어주면 거부감이 덜했다. 냄새에 예민한 만큼, 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건 꼭 강조하고 싶다. 이 방법은 어디까지나 건강한 고양이가 새 사료를 낯설어할 때의 이야기다. 섞는 것과 상관없이 원래 먹던 사료까지 갑자기 거부하거나, 하루 이상 거의 안 먹거나, 구토나 설사, 무기력 같은 증상이 함께 있다면 입맛 문제가 아니다. 고양이의 식욕 부진은 지방간 같은 위험한 상태로 빠르게 이어질 수 있으니, 이럴 땐 사료를 바꿀 게 아니라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 나도 열흘 내내 단순한 밥투정인지, 몸에 이상이 있는 건지 구분하려고 신경 썼다.
지금 호두 그릇엔 새 사료만 담겨 있다
한 번 실패하고 나서야 새 사료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돌이켜보면 첫 실패가 오히려 약이 됐다. 급하게 섞으면 안 된다는 걸 몸으로 배운 덕분에 두 번째엔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사료 바꾸기는 고양이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고양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사람 기준으로 '이 정도면 됐겠지' 싶은 속도가 고양이에겐 너무 빠른 경우가 많았다.
지금 호두 그릇엔 새 사료만 담겨 있다. 첫날 냄새만 맡고 홱 돌아서던 바로 그 사료를,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싹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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