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올라왔을 때, 제목만 보고 바로 클릭했습니다. 84제곱미터는 흔히 '국민 평수'라 불리는 34평형 아파트를 뜻하는데, 저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 대부분이 이 크기의 집에 살고 있으니 처음부터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상적인 소재로 공포를 만드는 영화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앞부분이 현실적일 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끌족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앞부분
주인공 우성은 적금, 주식, 대출에 어머니의 마늘밭까지 정리해서 간신히 아파트를 장만한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 정확히 '영끌족'에 해당합니다. 영끌이란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으로, 가진 자산을 전부 동원해 대출까지 최대한 받아 부동산을 매수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제가 직접 집 살 때 은행 대출 상담을 받아봤는데, 그 자리에서 나오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수치가 얼마냐에 따라 인생 계획이 통째로 바뀌는 그 기분을 알기 때문에, 우성이 이자 계산하며 한숨 쉬는 장면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LTV란 주택 가격 대비 대출 가능한 금액의 비율을 의미하며, 이 수치가 낮을수록 대출 한도가 줄어들어 자기 돈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문제까지 건드립니다. DSR이란 연간 소득 대비 전체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이 수치가 높으면 추가 대출이 막히고, 직장을 두 개 뛰어도 매달 빠져나가는 원리금이 수입의 절반을 넘어서는 상황이 생깁니다. 우성이 투잡을 뛰는 장면이 그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층간소음이 시작되는 부분도 제 경험상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밤에 누워 있다가 천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그 장면, 저도 예전에 윗집 소음 때문에 관리사무소에 전화한 적이 있어서 그 짜증과 무력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습니다. 처음엔 넘기다가 매일 밤 반복되니까 점점 예민해지고, 나중엔 소리가 없는데도 귀를 세우고 있게 되는 그 심리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었습니다. 실내 소음도 측정 기준과 관련해서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의 기준을 보면, 주간 43dB(데시벨), 야간 38dB 이상이면 공식적으로 층간소음으로 인정됩니다([출처: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https://www.noiseinfo.or.kr)).).) dB이란 소리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일상적인 대화가 약 60dB, 속삭임이 약 30dB 정도입니다. 기준 수치를 알고 나니 영화 속 우성이 겪는 상황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가 앞부분에서 만들어내는 공감의 핵심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영끌 후 금리 인상, 집값 하락, 파혼이 겹치는 청년 주거 현실의 정밀한 묘사
- 층간소음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의심받는 역전 구도
- 강하늘 배우가 표현하는 피로와 벅참이 공존하는 표정 연기

블랙코미디가 뒷심을 잃은 이유
일반적으로 블랙코미디 장르는 사회적 문제를 풍자하면서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유발하는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블랙코미디란 비극적이거나 불편한 현실을 비틀어 코미디로 만드는 장르 문법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 장르가 성공하려면 풍자의 대상이 끝까지 선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84제곱미터는 중반 이후부터 그 선명함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층간소음이라는 소재가 어느 순간 부실시공 문제와 연결되고, 거기에 언론 조작, 코인 투자, 전세 사기까지 얹히면서 이야기가 급격히 팽창합니다. 하나하나는 분명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동주택 층간소음 민원은 2023년 기준 약 4만 건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부실시공과 연관된 구조 문제로 분류됩니다([출처: 국토교통부](https://www.molit.go.kr)).).) 그런데 영화가 이 소재들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후반부로 질주해 버리니, 보는 입장에서는 맛있는 된장찌개에 갑자기 초콜릿을 넣은 것 같은 당혹감이 생겼습니다.
스포일러를 감수하고 말하자면, 층간소음의 진원지가 방송국 PD였다는 반전은 그 자체로 나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언론 권력이 서민의 일상을 조작 수단으로 삼는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날카롭습니다. 그러나 이 인물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인마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지면서, 앞부분의 현실감이 단번에 증발해 버렸습니다. 초반 40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리얼리즘(realism), 즉 현실적인 세계관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코인 투자 장면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빚을 내서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는 분명 지금의 청년 세대가 처한 투자 현실을 반영하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의 연출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흘러가면서 공감의 밀도가 떨어졌습니다. 초반처럼 묵직하게 눌러줬다면 훨씬 더 강하게 박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혜란 배우가 맡은 입주민 대표 은화는 영화 내내 인상 깊었습니다. 아파트를 지키려는 집착에 가까운 태도가 무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습니다. 내 집이 전 재산인 사람들이 그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필사적이 되는지,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앞부분 40분만큼은 올해 본 넷플릭스 한국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좋았습니다. 층간소음, 영끌, 부실시공, 이 세 가지 소재는 지금 이 시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우리 집 천장을 올려다보게 됐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계신 분이라면 한 번쯤 보시기를 권합니다. 앞부분의 밀도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있는 영화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관람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화 비평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