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프로젝트 Y를 틀었을 때, 저는 그냥 시원하게 터지는 범죄 액션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다 보니 전세 사기, 불법 토토, 유흥업소라는 현실적인 소재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인물들의 표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범죄 영화라기보다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한소희·전종서의 연기 케미, 기대 이상이었던 것들
이환 감독의 첫 상업 영화라는 점을 알고 나서, 솔직히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독립영화 출신 감독의 첫 상업작은 개성과 흥행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영화도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확실히 건졌습니다. 윤미선 역의 한소희와 이도경 역의 전종서는 버디 무비(buddy movie) 특유의 호흡을 잘 살렸습니다. 버디 무비란 성격이나 처지가 다른 두 인물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며 관계를 쌓는 장르를 말하는데, 두 배우는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끝내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하는 미묘한 긴장감을 꽤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둘 사이의 공기가 읽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김신록이 연기한 최가형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엄마이자 유흥업계의 전설이라는 설정인데,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캐릭터의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재균의 석구나 오마이걸 유아의 토사장 와이프 역도 각자 맡은 자리에서 제 몫을 했습니다.
영화의 음악을 그레이가 맡았다는 것도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느와르(noir) 장르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을 떠받치는 역할을 합니다. 느와르란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 속에서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범죄 서사 장르를 가리키는데, 그레이의 음악은 이 영화의 차갑고 건조한 질감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배우별 강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소희: 낮에는 꽃집 운영, 밤에는 유흥업소 에이스라는 이중생활을 몸으로 표현하는 집중력
- 전종서: 콜대기 역할 특유의 불안과 충동성을 날 것 그대로 살린 연기
- 김신록: 과거를 품고 있는 인물의 무게감을 대사 없이도 전달하는 내공
- 이재균: 웨이터이자 매니저 석구 역으로 극의 완급을 조절하는 조연 역할 충실
피카레스크 구조와 톤앤매너, 아쉬움이 남은 이유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피카레스크(picaresque) 구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피카레스크란 사회 하층부의 인물이 각종 사기와 모험을 거치며 세상을 헤쳐나가는 서사 방식으로,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않아도 독자나 관객이 그들의 편에 서게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미선과 도경이 토사장의 현금을 훔치려는 '프로젝트 Y'를 계획하는 과정이 딱 이 구조입니다.
초반 전개는 이 구조가 꽤 효과적으로 작동했습니다. 전세 사기를 당하고, 불법 토토에서 먹튀를 당하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두 사람의 발버둥이 현실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제 경험상, 영화 초중반에서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절박함이 스크린 너머로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반 이후부터 톤앤매너(tone and manner)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톤앤매너란 작품 전체에서 유지해야 할 분위기와 표현 방식의 일관성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잔인함과 욕설, 캐릭터의 과장된 행동이 필요 이상으로 쌓이면서 피로감을 줬습니다. 정영주가 연기한 황소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삭발 투혼까지 감행한 열정은 인정하지만,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보다는 과함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김성철의 토사장 역할도 개인적으로는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류의 불법 사업을 운영하는 권력자 역할은 나이와 연륜에서 나오는 묵직함이 중요한데, 조금 더 연배가 있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면 위협감이 더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전문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느와르 장르는 2010년대 이후 남성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여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프로젝트 Y는 그 흐름 위에 있는 작품이지만, 장르적 진화와 함께 서사의 완성도도 함께 올라와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국내 영화 산업 현황 통계를 보면, OTT 플랫폼을 통한 한국 영화 소비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극장 개봉작과 OTT 공개작 사이의 완성도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는 추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프로젝트 Y가 보여준 아쉬움은 더 두드러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영화 박화영이 리얼리즘으로 날 것의 충격을 줄 수 있었던 건, 그게 그 영화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업 영화는 그 거침을 오락성과 서사 완성도로 감싸야 합니다. 프로젝트 Y는 그 조율에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프로젝트 Y는 배우들의 연기와 초반의 현실적인 설정으로 분명히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 톤앤매너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피카레스크 구조가 가져야 할 경쾌함 대신 무거움만 쌓이면서 끝까지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소희와 전종서의 케미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볼 이유는 충분하지만, 서사의 정교함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조금 실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C 등급 정도로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