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를 보다가 빌런 캐릭터 때문에 오히려 더 몰입하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조각도시를 보면서 정확히 그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주인공의 복수극이 중심인 줄 알았는데, 정작 화면에서 눈을 못 뗀 건 악당 쪽이었습니다. 백도경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선명하게 그려지는지, 보면서 이 드라마의 설계 방식이 꽤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도경이라는 빌런이 이 드라마를 살린다
조각도시에서 백도경(도경수 분)은 단순히 주인공의 적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는 안티히어로(anti-hero)와도 구분되는 순수한 빌런입니다. 여기서 빌런(villain)이란 극 중에서 도덕적 기준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악역 캐릭터를 뜻하는데, 그냥 나쁜 놈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맥락 위에서 움직이는 인물이어야 시청자가 납득합니다. 조각도시의 백도경은 그 기준을 상당히 충족시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주인공 태중의 시선만 따라가면 되겠거니 했는데, 백도경이 등장할 때마다 극의 밀도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파티를 즐기고, 자신을 쫓아온 태중을 오히려 조롱하는 장면에서는 그 철면피함이 현실적으로 불쾌하게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드라마 속 빌런인데 현실감이 느껴진다는 게 이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 조형(character building) 측면에서도 짚을 지점이 있습니다. 캐릭터 조형이란 등장인물이 어떤 경험과 환경을 거쳐 지금의 성격을 갖게 됐는지를 극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백도경의 아버지인 백기원 캐릭터가 함께 등장하면서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보완됩니다. 권력을 가진 집안이 어떻게 죄를 세탁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간접적 묘사가 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이 드라마에서 도경수 배우가 연기로 소화해야 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꽤 넓습니다. 경박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캐스팅이 적절했다고 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백도경이라는 빌런을 읽는 데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죄책감 없이 범행을 반복하는 소시오패스적(sociopathic) 행동 패턴
- 권력자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처벌받지 않아 온 서사적 맥락
- 조롱과 여유로움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심리적 방어기제
요한과 유모의 반전, 그리고 복수극의 구조
백도경이 빌런의 축이라면, 요한과 유모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서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입니다. 두 사람이 모자 관계였다는 설정은 극적 반전(plot twist)으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플롯 트위스트란 시청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꺾이면서 기존에 쌓아온 서사적 전제를 뒤집는 구성 기법을 의미합니다. 이 기법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복선(伏線)이 촘촘해야 하는데, 조각도시는 그 부분을 어느 정도 해냈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은, 유모 캐릭터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요한의 가문 친척들이 몰살당하는 장면에서 유모가 끝까지 현장에 머무는 설정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충성이 아닌 공모(共謀)에 가깝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 장면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쳐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에서 복수극(revenge thriller)이라는 장르가 갖는 서사적 기능은 단순히 주인공이 이기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복수극이란 부당한 피해를 입은 인물이 스스로 정의를 실현해가는 과정을 통해, 시스템과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드라마적으로 풀어내는 장르입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복수극은 꾸준히 높은 시청 선호도를 보여왔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현실에서 해소되지 못한 사회적 불만을 대리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https://www.kocca.kr)).
태중이 총을 직접 만들고, 백도경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장면들은 이 복수극의 속도감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이 연달아 나올 때 드라마의 몰입도가 극대화되는데, 조각도시는 그 리듬을 잘 타고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 전개가 빠르게 지나가는 부분은 저도 아쉬웠습니다. 감정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있어서, 특정 장면에서 "왜 저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이라는 플랫폼이 이런 수위의 복수극 서사를 수용한다는 점 자체가 콘텐츠 시장 변화의 신호로 읽힙니다. 실제로 국내 OTT 이용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장르 드라마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합니다([출처: 방송통신위원회](https://www.kcc.go.kr)).
조각도시는 영화 '조작된 도시'를 원작으로 하는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원작을 본 분들이라면 세계관 확장 방식에도 눈길이 갈 것입니다. 저는 원작을 미리 보지 않고 드라마부터 접했는데, 그게 오히려 선입견 없이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각도시는 빌런이 얼마나 잘 그려졌느냐에 따라 몰입도가 결정되는 드라마입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 빌런의 윤곽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회차였고, 저는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직접 본편을 보면 유튜브 요약본에서 담지 못한 액션 신과 감정선이 있으니, 관심이 생겼다면 본편으로 바로 넘어가시는 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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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SuKJZjnSpDc?si=EQvYBaX5VZtFx5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