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숫자와 용어가 난무하는 어려운 영화일 거라 지레 걱정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좋은 재료를 끝까지 살려내지 못한 영화. 2019년 개봉작 '돈'이 딱 그랬습니다.
백 없는 청년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다
주인공 조일현은 시골에서 복분자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둔 평범한 청년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중개인으로 일하는데, 중개인이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주식을 사고파는 중개인을 말합니다. 수수료 한 건도 못 따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월급날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일현 앞에 번호표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외국계 브로커 출신으로 증권가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불리는 이 남자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주가 조작입니다. 주가 조작이란 특정 세력이 대량 매수와 매도를 반복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움직이는 불법 행위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트리플 위칭 데이를 전후해 스프레드 매도 주문을 대량으로 넣는 방식이 등장합니다. 트리플 위칭 데이란 주가지수 선물, 주가지수 옵션, 개별 주식 옵션의 만기일이 겹치는 날로, 이날은 대규모 포지션 청산이 몰리면서 시장 변동성이 극도로 커지는 시점입니다. 이 틈을 노리는 작전이라는 설정은 나름 현실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봐서 느낀 건, 일현이가 처음으로 큰돈을 손에 쥐는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겁니다. 류준열 배우가 얼굴 표정 하나로 그 짜릿함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동료들에게 술을 왕창 사고, 비싼 아파트로 이사 가고, 부모님 농장에 인력을 붙들리는 장면은 "역시 돈이 생기면 사람이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설정부터 마음이 쏠렸던 것은, 돈을 향한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 범죄에서 주가 조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습니다. 금융감독원이 매년 발표하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적발 현황을 보면 시세 조종 관련 조치 건수가 꾸준히 집계되고 있으며, 이는 영화 속 이야기가 결코 픽션만은 아님을 보여줍니다([출처: 금융감독원](https://www.fss.or.kr)).).)
영화가 보여주는 주요 금융 범죄 수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프레드 매도 주문 대량 집중 투입으로 시장 혼란 유발
- 불법 명의 도용 계좌를 통한 실체 은폐
- 작전 세력이 미리 포지션을 잡은 후 허수 주문으로 가격 유인
- 내부 정보를 활용한 선취매 후 고가 청산
좋은 재료를 끝까지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
조우진 배우가 연기한 금융감독원 직원 한지철은 제 기억에 오래 남은 캐릭터였습니다.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사냥개 같은 인물인데, 이 사람이 일현을 조여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당기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였습니다. 대사 하나하나에 감칠맛이 있었고, 주연인 류준열 배우와 주고받는 긴장감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유지태 배우의 번호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신선함이 부족했습니다. 차갑고 여유롭게 판을 설계하는 그 캐릭터가, 제가 전에 본 다른 영화의 유사한 인물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유지태 배우의 연기력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캐릭터 설계 자체에 새로운 면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주식 작전의 묘사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처리된 것이었습니다. 주가 조작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포지션(Position), 즉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방향과 규모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치밀한 과정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같은 금융 소재를 다룬 영화, 예를 들어 '빅쇼트'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비교하면 디테일의 차이가 상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모건 스탠리 등 실제 투자은행들이 사용하는 헤지(Hedge) 전략, 즉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반대 방향 포지션을 동시에 유지하는 기법 같은 부분이 영화에서는 사실상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기계적으로 흘러간 것도 문제였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일이 생기겠지 싶으면 정말 그대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말도 저는 개인적으로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까지 끌고 왔으면 뭔가 통쾌하든 충격적이든 한 방이 있어야 하는데, 힘 빠지게 마무리된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불공정거래로 인한 피해는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어 왔습니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이상 거래 심리 건수를 보면, 매년 수백 건의 시세 관련 이상 신호가 포착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금융당국에 통보됩니다([출처: 한국거래소](https://www.krx.co.kr)).).) 영화 '돈'이 이 현실을 좀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면 훨씬 묵직한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빽 없는 보통 사람이 큰 판에 발을 들이면 결국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건 항상 밑바닥 사람이라는 것, 그 씁쓸한 현실을 이 영화는 분명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 조금만 더 단단했다면, 류준열·유지태·조우진 세 배우의 연기가 훨씬 더 빛났을 텐데 하는 마음이 끝까지 남았습니다. 주식이나 금융 소재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즐기시는 편이라면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단, 치밀한 금융 스릴러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들어가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관람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