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노트북을 열어 파일을 내려받아 틀었습니다. 무려 20년 만에 나온 속편이라 손꼽아 기다렸거든요. 1편을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미란다 목소리가 맴돌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기대가 컸습니다. 과연 그 기대만큼의 영화였을까요?
줄거리 : 20년 만의 런웨이, 달라진 세상과 달라지지 않은 사람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2편이 단순한 패션 영화가 아니라 미디어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요.
이야기는 2026년으로 시작됩니다. 앤디는 이제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할 만큼 성장한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미란다는 디지털 전환의 물결 속에서 종이 잡지 런웨이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가 짚어 내는 현실이 꽤 날카롭습니다.
미디어 업계에서는 흔히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서 레거시 미디어란 인쇄 신문, 잡지, 지상파 방송처럼 디지털 이전 시대에 자리를 잡은 전통적인 매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화 속 런웨이가 바로 그 상징이죠. 실제로 미국 내 인쇄 잡지 광고 매출은 2000년대 초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수십 년 역사의 매체들이 줄줄이 폐간하거나 디지털 전용으로 전환했습니다([출처: Pew Research Center](https://www.pewresearch.org)).).)
제가 앤디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공감한 장면은 문자 한 통으로 날아온 해고 통지였습니다. 수상 소감을 막 마쳤는데 핸드폰에 해고 문자가 와 있다니, 그 장면을 보면서 요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등골이 서늘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일하는 방식과 고용 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미란다를 둘러싼 위기도 흥미롭습니다. 그린워싱(Greenwashing) 논란에 휘말린 의류 브랜드를 무비판적으로 실었다가 빌런으로 낙인찍히죠. 여기서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환경에 해로운 기업이 마케팅에서 친환경 이미지를 과장하거나 허위로 내세우는 행위를 말합니다. 패션 업계에서는 특히 민감한 이슈인데, 편집장이 이를 검증 없이 지면에 실었다는 설정이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2편에서 재등장하는 인물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앤디: 1편 이후 꿈이던 저널리스트로 성장, 해고 후 런웨이에 합류
- 미란다: 런웨이 편집장 자리를 지키며 콘텐츠 총괄 승진을 앞두고 있음
- 나이젤: 여전히 미란다 곁에서 일하고 있으며, 1편과 달리 마지막에 연설의 기회를 얻음
- 에밀리: 디올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런웨이를 인수해 권좌에 앉으려는 속내가 있음

1편과 비교해서 솔직하게 쓰는 관람 후기와 아쉬운 점
제가 직접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솔직한 첫 느낌은 이겁니다. 반갑고 따뜻한데, 조금 아쉽다.
1편에는 극적 긴장감(Dramatic Tension)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극적 긴장감이란 이야기 속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관객이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리게 만드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앤디가 무서운 편집장 앞에서 실수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그 핵심이었죠. 그런데 2편은 인물들이 이미 자기 자리를 갖춘 뒤의 이야기라, 그 팽팽한 맛이 상당히 옅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속편의 딜레마는 꽤 흔합니다. 캐릭터가 성장하면 서사의 갈등이 희석되는 구조적 문제가 생기거든요.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종이 잡지 산업의 위기, 인물들 사이의 권력 구도 변화, 옛 관계의 회복, 기업 인수합병까지 한 편에 욱여넣다 보니 어느 하나 충분히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영화 평론 매체에서도 "전작의 캐릭터 서사에 비해 플롯이 산만하다"는 평이 나왔을 만큼, 이건 저만의 느낌은 아니었습니다([출처: 씨네 21](https://www.cine21.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으라면, 미란다가 사샤 반즈와 인터뷰하는 장면입니다. 미란다는 사생활에 대한 자극적인 질문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1편에서 미란다 역시 이혼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 맥락을 알고 보면 그 장면이 단순한 프로의 절제가 아니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공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1편을 먼저 봤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었고, 처음 보는 분이라면 이 장면이 그냥 지나쳐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에밀리와 앤디의 관계 역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편에서 선배로서 앤디를 한심하게 봤던 에밀리가, 20년 후 자신의 속내를 들킨 뒤 앤디 앞에서 자신감을 잃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앤디는 그런 에밀리에게 "선배는 아이콘 그 자체"라고 말하며 손을 내밉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괜히 코끝이 찡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구나 싶었거든요.
결국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1편의 에너지를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20년이 지난 인물들이 세상의 변화 앞에서 어떻게 버티고 선택하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1편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1편 특유의 짜릿함을 기대하고 가신다면 기준을 조금 낮추고 가시는 편이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비우고 보면, 의외로 남는 장면들이 꽤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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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GBb6 C12 mC_o? si=shmIK_a9 LU2 Ke20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