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꾸로 늙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까, 처음엔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2008년 개봉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러닝타임 166분짜리 대작입니다. 긴 영화인데도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반전이 있는 영화가 아닌데도, 그 잔상이 유독 오래갔습니다. 시간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조용하고 단단하게 풀어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벌새가 세 번 나오는 이유,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영화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벌새 장면을 그냥 흘려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장면들이 영화 전체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벌새는 정확히 세 번 등장합니다. 마이크 선장이 타투를 보여주며 벌새의 특징을 설명하는 장면, 데이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창밖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장면, 그리고 벤자민의 삶 자체가 벌새처럼 해석되는 마지막 맥락까지. 이 세 번의 등장이 단순한 연출 장치가 아닙니다.
벌새는 생물학적으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후진 비행(Backward Flight)이 가능한 조류입니다. 여기서 후진 비행이란 몸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뒤쪽으로 날아가는 능력으로, 새들의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움직임입니다. 벤자민이 시간을 거슬러 살아가는 방식과 정확히 겹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상징이 있습니다. 바로 시계입니다. 영화에는 비선형 서사 구조(Non-linear Narrative)가 활용되는데, 여기서 비선형 서사란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영화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참석한 기차역 개통식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가 공개되는 장면으로 벤자민의 탄생과 운명을 연결합니다.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시계 장인이 만든 이 시계는 "모든 젊은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를"이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벤자민은 그 염원이 형상화된 존재처럼 태어납니다.
영화의 상징성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거꾸로 가는 시계: 벤자민의 역행하는 삶을 예고하는 복선
- 벌새: 후진 비행이 가능한 유일한 새로, 벤자민의 존재 방식을 상징
- 허리케인: 데이지가 숨을 거둘 때 몰아쳐 벤자민의 흔적을 씻어내는 자연의 섭리
- 봄이라는 계절: 벤자민이 집에 돌아오고, 데이지와 재회하고, 생을 마감한 계절
이렇게 놓고 보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됐는지가 보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는 이 상징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어긋난 두 사람의 사랑이 말해주는 것
벤자민과 데이지의 관계를 단순히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로만 보면 뭔가 중요한 걸 놓치게 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에 만나 평생을 서로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시간의 방향이 반대라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두고 비동기적 발달(Asynchronous Developm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비동기적 발달이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속도나 방향으로 성장하거나 변해가는 상태를 말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어도 같은 시점에 같은 방식으로 함께할 수 없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영화적 설정이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엇갈림을 겪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특히 데이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찾아온 벤자민을 거절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거절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방어 기제란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 반응을 말합니다.
그러다 1962년 봄, 데이지가 먼저 벤자민을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비로소 같은 시간 안에 놓입니다. 그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을 텐데, 영화는 그 짧은 순간을 조용하고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감동을 강요하는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영화의 감동적 힘에 대해서는 영화학 연구에서도 다뤄진 바 있습니다. 서사적 공감(Narrative Empathy), 즉 관객이 허구의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현상은 현실의 감정과 동일한 신경 기제를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APA](https://www.apa.org)).).)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단순히 "슬픈 이야기라서 우는" 게 아니라, 벤자민의 상황이 어딘가 나 자신과 겹쳐 보이기 때문에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벤자민이 딸의 첫 생일 이후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조용히 떠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선택이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달리 봤습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지워지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설정만 가져온 뒤 포레스트 검프의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두 영화가 서사적 구조와 삶을 긍정하는 방식에서 닮아 있는 건 같은 작가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하며, 개봉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위로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출처: 미국 영화 데이터베이스 IMDb](https://www.imdb.com/title/tt0421715/)).).)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오래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멀어져 있을 때, 그 어긋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벤자민 버튼이 조용히 보여줍니다.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진짜 맛은 그 느린 속도에 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관계로 지쳐있다면, 한 번 시간을 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는 영화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