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잃으면 가족이 더 보일 수 있을까요? 두 달 전 남편과 극장에서 미스매치를 보고 나오면서 저는 그 질문을 한참 붙잡고 있었습니다. 웃으려고 들어간 영화관에서 생각지도 못한 감정을 안고 나왔습니다. 단순한 코미디라 여겼던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기억상실이 만들어낸 웃음, 그 설정의 힘
이 영화의 주인공 봉수는 처음부터 꽤 지쳐 있는 사람입니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린 과거가 있고, 그 여파로 아내가 직접 창업해 생계를 꾸려가는 형편입니다. 회사에서는 눈치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겉돌고, 집에서는 딸 지운과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백수인 동생 만수,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 석구까지 더해지면 봉수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사면초가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 즉 어디서도 도움받지 못하는 처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봉수가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봉수가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이 영화의 핵심 장치가 바로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입니다.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사고 이전에 형성된 기억이 손상되거나 접근 불가능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봉수는 몸은 멀쩡한데 가족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억이 뒤엉켜서 아내를 오래된 친구로, 동생 만수를 직장 부장님으로 인식하는 이른바 '미스매치(mismatch)'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그 장면을 봤는데, 봉수가 만수를 굽실굽실 부장님 대하듯 모시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크게 웃어 버렸습니다. 옆자리 남편도 연신 웃더니 그 장면만큼은 한참 웃었습니다. 이 영화가 활용하는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 기법이 제대로 먹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극적 아이러니란 관객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긴장감과 웃음의 효과입니다. 딸 지운의 친구들에게도 스스럼없이 구는 봉수의 모습이나, 가족 비상 대책 회의가 열리는 장면에서 이 기법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미스매치가 잘 만든 코미디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웃음이 중반 이후 반복되면서 조금씩 신선함이 줄어드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래는 이 영화의 설정이 특히 빛났던 장면들입니다.
- 동생 만수를 직장 상사로 착각해 깍듯이 대하는 봉수의 행동
- 아내를 오랜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하며 벌어지는 소동
- 딸의 친구들 앞에서 전혀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봉수의 모습
- 가족 전체가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비상 회의 장면

관계의 오류가 드러낸 감동, 가족의 의미
영화가 진짜 힘을 발휘하는 건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서였습니다. 기억을 잃은 봉수는 이제 아무런 감정의 갑옷 없이 가족들과 부딪힙니다. 오랫동안 쌓였던 상처나 서운함 같은 선입견이 사라진 상태에서, 봉수는 어렴풋이 딸 지운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계산 없이 진심 어린 위로와 애정을 표현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울림이었습니다. 보통 가족 영화는 갈등이 쌓이고 해소되는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는데, 미스매치는 기억상실이라는 장치로 그 과정을 압축해 버립니다. 덕분에 감동이 빠르게 찾아오지만, 한편으로는 봉수가 마음을 여는 과정이 너무 매끄럽게 처리된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경험을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서사 곡선이 조금 더 촘촘했다면 더 깊이 빠져들었을 것 같습니다.
국내 영화산업에서 가족 코미디 장르는 꾸준히 관객의 지지를 받아 왔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가족 관람 가능 등급의 한국 영화는 전체 극장 관객의 30% 이상을 흡수하는 핵심 장르로 분류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https://www.kofic.or.kr)).).) 그만큼 이 장르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도 높고, 미스매치는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기억상실을 소재로 한 서사 구조는 이미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도 주목받아 왔습니다. 기억이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관한 연구들은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사실 관계 그 자체를 유지시키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대인 관계 기억(Interpersonal Memory)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라 감정적 유대의 기반이 된다고 설명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https://www.koreanpsychology.or.kr)).).) 봉수가 기억을 잃고도 딸에 대한 감정을 어렴풋이 되찾는 장면이 단순한 영화적 허용을 넘어 설득력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봉수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정말 자연스러웠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어수룩하면서도 정 많은 그 캐릭터가 억지로 꾸며진 게 아니라 진짜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아저씨처럼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그 덕분에 봉수의 회복 과정에 감정이입이 됐고,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 졌달까요.
미스매치는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된다는 점에서 완전한 반전의 쾌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단점만은 아닙니다. 예상 가능한 따뜻함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나란히 앉아 웃고, 서로 눈 마주치며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깊은 여운보다 편안한 웃음과 소소한 감동을 원하신다면 미스매치는 좋은 선택입니다. 저처럼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조금 더 얻어 나오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라면, 영화가 끝난 뒤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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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uaCvY9 Trt4 Q? si=FC7 k6 Q03 jDfdK3 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