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히 골라 온 새 사료를 냄새만 맡고 돌아섰다결국 원래 사료를 다시 부어주고 말았다. 새 사료를 처음 꺼낸 바로 그날이었다.건강을 생각해서 사료를 더 좋은 걸로 바꿔주고 싶었다. 성분을 꼼꼼히 비교해서 새 사료를 골랐고, 이제 그릇에 부어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그런데 호두는 그릇에 코를 대고 냄새만 맡더니 홱 돌아섰다. 배고프면 먹겠지 싶어 그대로 뒀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입도 안 댔다. 원래 사료 그릇을 치우고 새것만 줬더니, 밥그릇 앞에서 애처롭게 울며 나를 쳐다봤다.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찾아보니 고양이는 입맛이 굉장히 보수적이라, 사료를 갑자기 바꾸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됐다. 고양이가 밥을 안 먹고 버티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만 제대로 ..
바닥에 흩어진 슬리퍼 조각을 보고 아찔했다그 무렵 우리 집 현관에는 멀쩡한 슬리퍼가 한 켤레도 없었다.어느 날부터 호두가 슬리퍼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특히 푹신한 실내 슬리퍼를 좋아했는데, 앞코를 앞발로 감싸 쥐고 뒷발로 캉캉 차면서 이빨로 물어뜯었다. 사냥할 때 쥐를 잡는 딱 그 동작이었다. 슬리퍼 표면은 너덜너덜해졌고, 심할 땐 작은 조각이 뜯겨 나왔다.손 무는 버릇이며 새벽 습격까지 사냥 놀이로 하나씩 잡아왔는데, 엉뚱한 곳에서 새 문제가 터진 것이다.처음엔 슬리퍼 하나 망가지는 거야 뭐 하고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뜯긴 조각이 바닥에 흩어진 걸 보고 아찔했다. 저걸 삼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물건이 상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칫 이물을 삼켜 위험해질 수 있는 문제였다.혼내봤자 소용없다는 건 그동..
좋은 방석을 사줬는데 안 쓰는 게 문제였다캣타워를 창가로 옮겨 낮 동안의 일과를 바꿔준 뒤, 이번엔 '잠'에 관심이 갔다. 고양이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자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얼마나 편하게 자느냐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았다.그래서 폭신한 사각형 방석을 하나 마련했다. 푹신하고 적당히 넓어서 몸을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제품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여기서 포근하게 잘 거라고 기대했다.그런데 웬걸, 우리 고양이 호두는 이 방석을 잘 쓰지 않았다. 몇 번 킁킁대고 올라가 보긴 했지만, 정작 낮잠은 엉뚱한 곳에서 잤다. 신경 써서 산 방석은 덩그러니 비어 있고, 호두는 맨바닥이나 소파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처음엔 '방석이 마음에 안 드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
물을 틀기도 전에 전쟁이 시작됐다목욕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호두는 구석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날은 호두가 어디선가 끈적한 무언가를 잔뜩 묻히고 온 날이었다. 혀로 핥아서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씻겨야 했다. 고양이 전용 샴푸까지 미리 사두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목욕을 시켰는데,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문제는 물을 틀기도 전부터였다. 욕실에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호두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욕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도망 다니기 바빠서, 붙잡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겨우 잡아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목욕하는 내내 야옹야옹 쉴 새 없이 울어댔다. 평소엔 안 내던 다급한 소리였다. 물이 몸에 닿을 때마다 발버둥은 더 심해졌고, ..
안 갖고 노는 장난감만 늘어갔다거실 한쪽에 안 갖고 노는 장난감이 하나둘 쌓여갔다.처음엔 분명 낚싯대만 꺼내면 호두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다. 그런데 며칠 같은 방식으로 놀아주니 반응이 뚝 떨어졌다. 낚싯대를 흔들어도 슬쩍 보고는 그냥 엎드려버리는 날이 늘었다. 공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발로 툭툭 치며 잘 놀더니, 어느새 굴려줘도 쳐다보지 않았다.그동안 무는 버릇이며 새벽 습격까지 많은 걸 사냥 놀이로 풀어왔는데, 정작 그 놀이에 호두가 질려버린 것이다.새 장난감을 사주면 될까 싶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새것도 사흘이면 시들해졌다. 계속 사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장난감 개수가 아니라, 내가 매번 똑같이 놀아준 것 아닐까? 그래서 이미 갖고 있는 낚싯대와 공..
검은 옷만 입으면 호두 털이 따라다녔다검은 옷은 입는 순간 호두 털 전시장이 됐다.환절기가 되자 온 집 안에 털이 날리기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려도 돌아서면 또 털 뭉치가 굴러다녔다. 무엇보다 걱정된 건 호두가 그루밍하다 삼킨 털이 뱃속에서 헤어볼로 뭉치는 것이었다. 빗질로 죽은 털을 미리 걷어내주는 게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발톱, 양치, 화장실까지 하나씩 해결해 오면서도 빗질만큼은 계속 미뤄왔다. 호두가 빗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브러시를 들고 다가가기만 해도 슬금슬금 도망갔고, 억지로 몇 번 빗기려 하면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거나 손을 물려고 했다. 특히 등 아래쪽이나 꼬리 근처를 건드리면 예민하게 반응했다.억지로 빗기다가는 '빗은 싫은 것'으로 굳어질 게 뻔했다. 그래서 발톱과 양치 때 효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