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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광주에서 찍은 영상이 없었다면 5.18의 진실은 영영 묻혔을지도 모릅니다. 밤 11시가 넘어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넷플릭스를 켰다가, 저는 이 영화 앞에서 두 시간을 꼼짝도 못했습니다.
실화 배경: 힌츠페터 기자는 어떻게 광주에 들어갔나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해외 보도가 그나마 일찍 이루어졌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큰 사건이 나면 외신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들 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따져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戒嚴令)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한 상태였습니다. 계엄령이란 전시나 국가 비상사태 때 군이 행정·사법권까지 장악하는 비상조치로, 쉽게 말해 언론이 무엇을 쓸 수 있고 없는지를 군이 통제하는 체제입니다. 국내 방송은 이른바 '땡전 뉴스'로 불리는 관제 보도만 내보냈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지역 사람들은 거의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전주에 살던 누군가는 초등학교 앞에 장갑차가 떡하니 서 있는 걸 보고도, 군인 아저씨가 신기하다며 안을 구경시켜 줘서 그저 재밌었다고 회상했다고 합니다. 그게 얼마나 섬뜩한 순간이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고요.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공영방송 ARD의 특파원이었던 위르겐 힌츠페터는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도움을 받아 군의 검문을 뚫고 광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화에서는 김사복이 김만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힌츠페터가 죽을 때까지 그를 '전우'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실화입니다. 힌츠페터가 촬영한 필름은 당시로서는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물건이었고, 그것이 서독에서 전파를 타면서 5.18의 실상이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출처: 5·18 기념재단).
제가 이 대목에서 멈칫했던 건, 힌츠페터가 단순히 용감한 기자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 어디서 총소리가 날지 모르는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간 그 장면이 지금도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 계엄령 확대로 국내 언론은 사실상 보도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 힌츠페터의 영상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며 비밀리에 유통됐고, 화면이 너무 흐려 형체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 그 흐릿한 비디오테이프가 명동성당 같은 공간에서 상영되며 이후 1987년 항쟁의 씨앗이 됐습니다.
힌츠페터와 송강호: 소시민 가장이 변해가는 과정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틀 때만 해도 '역사 교과서를 영화로 만든 것'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비장한 음악과 함께 역사적 장면들이 줄줄이 나오다 끝나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김만섭은 영웅과 거리가 멉니다. 밀린 방세 걱정, 딸아이 분유값 계산이 먼저인 사람입니다. 그가 광주행을 선택한 이유도 처음엔 순전히 10만 원이라는 거액 때문이었는데, 당시 대학 등록금이 6,000원 선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 기준으로 약 300만 원에 달하는 하루 일당입니다. 그 현실감이 오히려 이 영화를 붙잡아 두는 힘이라고 저는 봅니다.
1인칭 시점(point of view) 서사 방식도 이 영화의 핵심 장치입니다. 1인칭 시점이란 카메라와 이야기의 흐름이 주인공의 눈과 감정에 밀착해 전개되는 방식으로, 관객이 만 섭의 눈으로 광주를 처음 보고, 만 섭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를 함께 겪게 됩니다. 밝았던 광주의 화면이 최루탄 연기로 뿌옇게 흐려지고, 광주 MBC가 불타는 밤이 되면 화면 자체가 붉게 물드는 연출이 그냥 나온 게 아닌 이유입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제가 화면 앞에서 자세를 고쳐 앉은 건 바로 유턴 장면이었습니다. 광주를 빠져나와 딸에게 사 들고 가던 신발을 손에 쥔 채 핸들을 꺾어 다시 돌아가는 그 짧은 장면. 영화 초반 대학생 재식에게 던졌던 "학생이 내려간다고 뭐가 달라져"라는 꼰대스러운 대사가 그 순간 만섭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옵니다. 서울 택시 한 대가 광주로 간다고 뭐가 달라지냐고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도 핸들을 돌리는 사람. 연년생 남매를 재운 그날 밤, 저도 모르게 그 장면에서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송강호의 연기는 제 경험상 이번에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큰 대사 없이 눈빛과 어깨의 각도만으로 한 사람이 무너지고 다시 서는 과정을 설득해 냅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광주 택시기사 태수, 류준열이 연기한 대학생 재식도 영화의 감정선을 단단하게 받쳐 주는데, 두 사람 덕분에 울기도 하고 웃으며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과 클로즈업이 동시에 감정을 지시하는 순간이 몇 번 겹칩니다. 실화의 무게 자체가 워낙 강한 만큼, 더 담담하게 뒀어도 충분히 울렸을 장면에서 연출이 한 발 앞서 나간 느낌이었습니다. 극적 편의를 위한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관객의 감정을 정화하고 해소시키는 장치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지나치면 오히려 실화의 무게를 희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잊히기 쉬운 역사를 평범한 한 사람의 얼굴로 되살려 낸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실존 인물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생전에 직접 그를 언급하며 '전우'라고 표현했습니다. 영화에서는 김만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힌츠페터는 죽기 전까지 김사복을 찾고 싶어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연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 인물인데, 실제로는 힌츠페터의 취재 전 과정을 옆에서 가능하게 한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Q. 힌츠페터 기자가 찍은 영상은 어떻게 퍼졌나요?
A. 서독 ARD 방송을 통해 해외로 먼저 나간 뒤, 비디오테이프로 복사되어 국내에 비밀리에 유통됐습니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다 보니 화면이 너무 흐려 형체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이 테이프가 명동성당 등지에서 상영되면서 5.18의 실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이후 19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Q.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나요?
A. 극적 구성을 위해 각색된 장면들이 있습니다. 김만섭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명이고, 일부 인물과 사건은 영화적 편의를 위해 재구성됐습니다. 다만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촬영했다는 사실, 검문을 뚫고 들어갔다는 사실, 그 필름이 해외로 나가 보도됐다는 사실은 실화 그대로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영화인 만큼, 사실과 픽션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영화 1987과 택시운전사는 어떤 관계인가요?
A. 두 영화는 시간적으로 이어집니다. 택시운전사가 1980년 5.18을 다룬다면, 1987은 그로부터 7년 뒤 6월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1987 속 대학 동아리방에서 학생들이 비밀리에 보는 바로 그 비디오테이프가, 택시운전사에서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입니다. 두 편을 이어서 보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결론
지쳐서 그냥 잠들려다 켠 영화가 이 정도로 오래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느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뎌져 있던 그날 밤, 저는 화면 속 만 섭에서 제 모습을 조금 봤습니다. 당장 오늘 먹고사는 일이 가장 급한 사람이 어느 순간 핸들을 돌리는 그 장면이, 지친 하루 끝에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영웅 서사가 아닙니다. 비겁해져도 이해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비겁하기를 거부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영화 1987과 함께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두 편을 이어 보면 1980년부터 1987년까지의 흐름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