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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긴어게인
    비긴어게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이 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통째로 불러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그 경험을 비긴 어게인으로 했습니다. 2014년 개봉 당시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생각보다 훨씬 좋았던 영화, 그리고 그 뒤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영화. 다시 보고 나니 처음과는 또 다른 감정이 남았습니다. 연기, 음악, 그리고 자기회복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 영화를 다시 정리해 봤습니다.

    극장에서 봤던 기억, 넷플릭스에서 꺼내다

    음악 영화는 흔히 '보는 영화'가 아니라 '듣는 영화'라고들 합니다. 일반적으로 음악 드라마 장르는 감동적인 무대 장면이나 화려한 퍼포먼스가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비긴 어게인을 다시 보면서 그 공식이 꼭 맞지는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 영화는 2013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처음 공개된 뒤 이듬해 국내 극장에 걸렸습니다. 여기서 선댄스 영화제란 매년 1월 미국 유타주에서 열리는 독립영화 축제로, 상업 논리보다 작품성과 독창성을 앞세우는 작품들이 주목받는 자리입니다. 그 무대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가진 성격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저도 개봉 당시 극장을 찾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자리에서 나올 때는 OST를 검색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나 라디오에서 그 멜로디를 다시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넷플릭스 검색창을 열었습니다. 다행히 있었고,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 2013년 선댄스 영화제 첫 공개, 2014년 국내 정식 개봉
    • 감독 존 카니, 주연 키이라 나이틀리·마크 러팔로
    • 넷플릭스에서 현재 스트리밍 가능
    요약: 오래전 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라디오 OST 한 곡이 되살렸고, 다시 꺼내 본 재감상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 연기가 영화를 받쳐 준다

    음악 영화에서 비전문 가수가 주연을 맡으면 노래보다 연기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에서는 가창력이나 음악적 완성도가 연기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 영화에서 음악을 잃고 길을 잃은 인물 그레타를 연기합니다. 제가 직접 다시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절제된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눈물을 터뜨리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이른바 내면 연기(internal acting), 즉 표면적인 리액션 없이 인물 안의 감정을 표정과 호흡으로만 드러내는 방식인데, 이게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연기입니다.

    마크 러팔로가 연기하는 댄도 비슷합니다. 알코올과 실패로 무너진 음악 프로듀서라는 설정인데, 과장 없이 무기력한 사람의 질감을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억지스러운 감정선이 느껴지지 않는 건, 탄탄한 연기가 영화 전체를 단단하게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가수 애덤 리바인과 배우 헤일리 스테인펠드도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해 입체감을 더합니다.

    요약: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의 절제된 내면 연기가 영화 전체의 감정적 설득력을 만들어 냅니다.

    뉴욕 거리가 스튜디오가 되는 음악의 진정성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설정은 녹음 방식에 있습니다. 스튜디오 대신 뉴욕의 옥상, 골목, 지하철 플랫폼이 그대로 녹음 공간이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연출 아이디어가 아니라, 감독 존 카니가 영화 전체에서 말하려는 주제 의식과 직결됩니다.

    존 카니는 이미 〈원스(Once)〉를 통해 음악과 진정성의 관계를 탐구한 감독입니다. 비긴 어게인에서도 그 시선은 같습니다. 음악 산업의 상업성(Commercialism), 즉 음악을 숫자와 계약으로 환산하는 논리에 맞서, 도시의 날것 소음을 배경 삼아 녹음한 앨범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끊임없이 대비시킵니다. 여기서 상업성이란 음악 자체의 가치보다 판매 가능성과 마케팅 전략이 우선시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거리 녹음 장면이 그냥 감각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 선택 하나하나가 대사 없이도 감독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무대가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 발언입니다.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영화음악 전문 매체 사운드트랙닷넷(출처: Soundtrack.net)은 비긴 어게인의 OST를 2014년 주목할 사운드트랙 중 하나로 꼽은 바 있습니다. 곡 하나하나가 장면 안에 유기적으로 얹혀 있어, 멜로디가 화면보다 먼저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요약: 뉴욕 거리를 스튜디오로 삼는 설정은 상업성 대 진정성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선택입니다.

    자기 회복의 서사, 로맨스가 아닌 이유

    비긴 어게인을 처음 보는 분들 중에는 두 주인공이 결국 연인이 되는 결말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녀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서사는 로맨스로 귀결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존 카니는 그 방향을 정확하게 거부합니다.

    이 영화의 진짜 줄기는 자기 회복(Self-Restoration)의 서사입니다. 여기서 자기 회복이란 외부의 관계나 성공으로 상처를 덮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목소리와 방식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레타는 실연으로, 댄은 직업적 실패로 자기 자신을 잃은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둘이 함께 앨범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가 각자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점이 제가 다시 봤을 때 가장 강하게 다가온 부분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두 사람이 연인이 되지 않는 결말이 조금 싱겁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그 선택이 오히려 영화 전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 전에 덮어 둔 영화를 다시 열어,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를 슬쩍 겹쳐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영화 연구자 린다 시거(Linda Seger)는 그의 저서에서 강한 캐릭터는 외부 갈등보다 내면의 변화 호(Character Arc)로 기억된다고 말합니다(출처: Linda Seger 공식 사이트). 여기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한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을 말하는데,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와 댄은 그 교과서적인 사례에 가깝습니다. 두 인물 모두 처음과 끝이 다른 사람입니다.

    • 그레타: 실연 이후 자신의 음악적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
    • 댄: 직업적 실패와 가족 관계 붕괴에서 프로듀서로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
    • 두 사람의 관계: 로맨스가 아닌 상호 회복의 촉매제로 기능
    요약: 비긴 어게인의 핵심은 로맨스 완성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자기만의 음을 되찾는 자기회복의 서사입니다.

    다시 보고 나서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영화 전체가 잔잔한 톤을 유지하기 때문에 감정의 큰 굴곡은 없습니다. 자극적인 전개를 기대하는 분께는 분명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저도 중간에 집중이 흩어지는 순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자체가 이 영화의 정체성이고,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뢰가 갔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제목처럼, 오래 묵혀 둔 영화를 꺼내 보는 행위 자체가 이 영화와 닮아 있습니다. 한 번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꺼냈을 때 다른 것이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됩니다. 넷플릭스에서 바로 볼 수 있으니, 오늘 저녁 조용히 이어폰 하나 꽂고 재생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Zg_z0 O7 ZWLA? si=sKXx6 Z_NmOGZjA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