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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100% 쓰게 해준다는 약이 생긴다면, 당신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이 질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답이 떠올라서 오히려 조금 무서웠습니다. 2011년 개봉한 SF 스릴러 리미트리스는 그 솔깃한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약이 아니라 그것을 손에 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영화입니다. 8년 전에 봤다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다시 눌렀는데, 여전히 같은 장면에서 두근거렸습니다.
야망이라는 거울 — 신경강화제가 드러내는 것
영화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마감을 앞두고도 한 줄 못 쓰던 무명작가 에디 모라가 NZT-48이라는 신경강화제를 손에 넣고 삶이 통째로 뒤집힙니다. 여기서 신경강화제(Nootropic)란 인지 기능, 즉 기억력·집중력·판단력 등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약물 또는 물질을 총칭합니다. 현실에서도 모다피닐 같은 각성제가 비슷한 맥락으로 논의되곤 하는데, 학계에서는 그 효능과 윤리성을 두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8년 전,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때였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건 없어서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둘이 나란히 들여다봤는데, 그 시절 공기 같은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최근에 문득 영화가 떠올라 넷플릭스에 검색했더니 올라와 있어서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신기한 건, 8년이 지났어도 브래들리 쿠퍼가 무기력한 눈빛에서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해 가는 장면에서 똑같이 몰입했다는 겁니다.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에디가 NZT-48로 뇌의 잠재력을 전부 끌어 쓰게 된 뒤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어딘지 생각해 보면, 그게 결국 그 사람의 본심입니다. 더 빠른 성공, 더 큰 부, 더 높은 자리—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능력을 쥔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영화는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인지적 자아(Cognitive Self), 즉 사고하고 판단하는 주체로서의 자아가 외부 물질로 증폭되었을 때 그것이 여전히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보고 나서도 한참을 따라다닙니다.
신경과학(Neuroscience) 분야에서는 인간의 뇌가 평소에도 거의 모든 영역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이미 정설로 자리 잡혀 있습니다. 신경과학이란 뇌와 신경계의 구조·기능·발달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fMRI 영상 연구들이 이를 반복적으로 뒷받침해 왔습니다. 그러니 '뇌의 10%만 쓴다'는 영화 속 전제는 과학적으로 틀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허구를 트집 잡기보다는, 그 허구가 왜 이토록 강하게 당기는지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믿고 싶기 때문 아닐까요.
- NZT-48로 능력을 얻은 에디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월가(Wall Street)의 금융 시장이었습니다. 작가로서의 꿈보다 부와 권력이 먼저 떠오른 것은, 약이 욕망을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욕망을 꺼낸 것임을 보여줍니다.
-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칼 밴 룬 역은 NZT 없이도 정상에 선 인물입니다. 약 없이 쌓은 성취와 약으로 얻은 성취 사이의 대비를 인물 배치 자체로 표현한 설계가 영리합니다.
- 약의 부작용으로 등장하는 블랙아웃(Blackout), 즉 약을 복용한 시간대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현상은 단순한 스릴러 장치가 아닙니다. 증폭된 자아가 저지른 행동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행동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성과주의 사회의 민낯 — 지름길의 유혹과 그 대가
영화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장면은 쿠퍼가 사채업자 일당에게 궁지에 몰린 채 끝내 빠져나오는 대목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이 아닌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봤는데도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질만큼 연출이 밀도 있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위기마다 약의 힘으로 매끄럽게 해결되는 전개가 반복되다 보니 중반 이후 긴장이 살짝 헐거워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약이 있으면 다 된다는 공식이 굳어질수록 서사의 팽팽함이 조금씩 빠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스릴러로 소비되지 않는 이유는, 그 이면에 성과주의(Meritocracy) 사회의 불안을 정확하게 짚어내기 때문입니다. 성과주의란 능력과 결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사회 구조를 말하는데, 이 체계 안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을 내면화합니다. 한 알이면 단숨에 격차를 메울 수 있다는 영화의 유혹이 그토록 강렬하게 와닿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OII)의 연구에 따르면, 인지 향상 목적의 약물 사용은 학업·직업 경쟁이 극심한 환경일수록 더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출처: Oxford Internet Institute). 이는 영화 속 NZT-48의 유혹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심리를 정밀하게 투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경쟁 압력(Competitive Pressure)이 강할수록 지름길에 대한 욕구도 강해진다는 건, 데이터가 아니어도 주변을 보면 이미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잠깐 생각했습니다. 저런 약이 실제로 있다면 어떨까. 그 생각이 솔깃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웠던 건, 약이 없어진 뒤의 제 모습이 더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의존성(Dependency), 즉 특정 물질이나 행동 없이는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는 영화가 가장 냉정하게 경고하는 지점입니다. 성취가 약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성취는 온전히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한편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가소성이란 경험과 학습에 의해 뇌의 구조와 기능이 실제로 바뀔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출처: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다시 말해 뇌는 이미 스스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리미트리스가 결국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약이 없어도 이미 가능성은 있는데, 우리는 왜 지름길을 먼저 찾는가.
8년 전에 봤고,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삶의 모양도 꽤 바뀌었는데, 같은 영화 앞에서 여전히 두근거린다는 게 묘하게 좋았습니다. 리미트리스는 두뇌 능력에 관한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야망, 그리고 그 대가에 관한 영화입니다. 한 알의 약이 모든 걸 바꿔준다는 설정이 솔깃하면서도 왜 불편한지, 보고 나서 그 감각을 잠깐 붙들고 있어 보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오래전에 봤다가 기억 속에 묻어뒀던 분이라면, 지금 다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장면에서 무엇을 다르게 느끼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문턱은 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