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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공포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게 조금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좋았습니다. 붐비지 않는 극장, 낮은 기대치,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아버린 영화 한 편. 지난 3월 남편과 함께 CGV에서 본 영화 삼악도 이야기입니다. 무서운 것을 좋아하지만 요즘 공포 영화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끼셨던 분이라면, 이 글이 조금 다른 판단 기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포 연출, 점프스케어 대신 무엇을 택했나
요즘 멀티플렉스 극장에 걸리는 공포 영화의 절반 이상은 점프스케어(jump scare)에 의존합니다. 점프스케어란 갑작스러운 화면 전환이나 굉음으로 관객을 순간적으로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인데, 효과는 즉각적이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 기억에서 지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영화에 점점 면역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런데 삼악도는 처음부터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귀에 죽은 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장면, 마을 주민이 돼지 피를 뿌리며 환영 인사를 건네는 장면에서 큰 소리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미 그 시점부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영화가 사용한 것은 분위기 공포(atmospheric horror)에 가까웠습니다. 분위기 공포란 시각적 충격 대신 장소의 기운, 인물들의 표정, 이야기의 어긋남으로 불안을 축적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관객에게 "지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감각을 주되, 그 실체를 쉽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공포가 극장 안보다 극장 밖에서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 갑작스러운 굉음 없이 장면 자체의 기이함으로 불안을 쌓아 올리는 연출
- 마을 전체가 하나의 덫처럼 설계된 공간 구성
- 주인공이 위험을 인지하는 속도와 관객이 인지하는 속도의 간극을 이용한 서스펜스
오컬트 장르가 역사와 만났을 때
삼악도의 배경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음양사 출신의 일본인 사토 준니치가 조선의 한 산골 마을에 세운 사이비 종교 삼선도가 이 영화의 뿌리입니다. 음양사(陰陽師)란 일본 고유의 점술·주술 전통에서 음양오행을 다루는 사람을 일컫는데, 쉽게 말해 영적 의식을 집행하는 종교적 실행자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은 오컬트 설정이 처음에는 다소 작위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조합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맞물려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가 삼선도의 역사와 현재의 아카모리교를 연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현재의 종교가 과거의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설정은, 사이비 종교가 실제로 이름과 형식을 바꿔 생존해 온 방식과 겹쳐 보여 섬뜩했습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유사종교·신흥종교 단체의 수는 수백 개에 달하며, 그중 상당수가 조직 구조를 유지한 채 명칭만 바꿔 활동을 이어간 사례가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픽션이라고 선을 긋기 어려운 설정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토 준니치의 딸 사토나미를 둘러싼 저주, 봉인제와 부활제가 100년 단위로 충돌하는 구조는 오컬트 서사의 고전적 문법인 죽음-부활-저주 삼각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죽음-부활-저주 삼각 구조란 억울하게 죽은 존재의 원한이 반복적 의식을 통해 현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컬트 장르의 기본 뼈대를 말합니다.
역사적 맥락을 오컬트에 접목한 시도 자체는 한국 공포 영화에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연간 보고서에서도 역사 소재를 활용한 장르 영화 기획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사이비 종교가 던지는 질문, 영화 밖에서도 유효하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을 처음 볼 때, 저는 그들을 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뱀을 신으로 모시고, 돼지 피를 뒤집어쓰며 황홀해하고, 악귀를 수호신이라 부르는 사람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하루가 지난 뒤 그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을 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집단 내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과 외부 현실이 충돌할 때, 현실을 바꾸는 대신 믿음을 더 강하게 고수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정확히 이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이런 심리는 극단적인 사이비 집단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판단만 옳다고 믿고,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며, 집단의 논리에 개인의 판단을 맡기는 모습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줄 뿐입니다. 아카모리교 측은 봉인제를 치르러 오고, 마을 사람들은 부활제를 올리며, 두 집단은 같은 존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믿습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명확히 답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불확실성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괴물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무서웠습니다.
- 봉인제를 올리는 아카모리교와 부활제를 올리는 마을 사람들이 같은 신을 두고 정반대의 의식을 치르는 구조적 아이러니
- 집단 내 인지 부조화가 개인의 판단력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군중 장면
- 사이비 종교의 물리적 공포보다 믿음 자체의 맹목성을 더 위협적으로 그리는 연출 방향
연기와 서사 구조, 솔직한 장단점 평가
조윤서 배우의 연기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공포 영화의 주인공 연기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과장 없이 무너지는 것인데, 채소연이 마을의 실체를 하나씩 파악해 가면서 점점 공포로 잠식되는 과정을 조윤서 배우가 눈빛과 몸의 긴장감만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저는 그 연기를 보면서 실제로 숨을 참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배우 한 명이 관객의 호흡을 이 정도로 끌어들인다면 성공한 연기라고 봅니다.
곽시양 배우가 맡은 구한 법사 역할도 묵직했습니다. 말수가 적고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도 길지 않은데, 등장할 때마다 공간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런 역할은 과하게 연기하면 오히려 공포감이 줄어드는데, 절제된 카리스마로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구조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선형 서사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장면을 배치하거나,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조각내어 보여주는 서사 방식입니다. 이 구조가 여운과 깊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맞지만, 극장에서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적지 않은 인지 부담을 줍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어느 시점의 이야기인지 놓쳤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완전히 맞춰진 것은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친절함과 여운 사이에서 이 영화는 여운 쪽으로 상당히 멀리 걸어갔습니다. 그게 미덕인지 단점인지는 보는 사람의 기대치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그 수고가 아깝지 않았지만, 모든 관객에게 같은 경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삼악도는 잘 만든 영화라는 말을 쉽게 하기도, 쉽게 안 하기도 어려운 작품입니다. 공포 연출의 방향은 분명히 옳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그 방향을 충실히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관객이 그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곱씹는 재미를 아는 분, 그리고 공포의 실체보다 공포의 기운을 즐기는 분께 권합니다. 잔인하고 섬뜩한 장면이 적지 않으니 그 점은 미리 감안하시고 들어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극장을 나선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뱀이 꿈틀거리는 장면과 마을 사람들의 황홀한 표정이 가끔 떠오릅니다. 순간의 놀람이 아니라 이야기의 질감이 남는 영화, 삼악도는 저에게 그런 작품이었습니다.